우리는 평소처럼 출근하고, 친구를 만나고, 주식을 사고, 내일을 계획합니다. 세상은 늘 어제와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믿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집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일 수도 있고, 믿었던 대기업의 파산일 수도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사건이 터진 직후,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사실 징조가 있었거든."
정말 그럴까요? 정말 우리는 알고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블랙스완에 무기력한 이유”
우리는 왜 블랙스완, 즉 '발생 확률은 극히 낮지만 파괴력은 엄청난 사건'을 예측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시하기까지 할까요? 그 답은 우리 뇌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인 '정규분포의 함정'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평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키, 몸무게, 지능지수 같은 것들이 그렇죠. 극단적으로 크거나 작은 사람은 드뭅니다. 이것이 바로 가우스 분포, 즉 정규분포입니다. 통계학자들은 이를 '얇은 꼬리'라고 부릅니다. 꼬리 부분으로 갈수록 확률이 급격히 0에 수렴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간 사회와 경제, 그리고 우리의 삶은 종종 이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습니다. 대신 '두꺼운 꼬리'를 가진 분포를 따르죠. 통계적으로는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자주 일어나는 현상, 이것이 바로 테일 리스크 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와 인과관계를 선호한다. 그래서 위험에 더 취약해진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심리적 기제가 바로 '서사 오류(Narrative Fallacy)'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너먼과 그의 동료 아모스 트버스키는 인간이 복잡한 정보를 처리할 때 논리보다는 '이야기'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파편화된 사건들을 엮어 "A 때문에 B가 일어났고, 그래서 C가 된 거야"라는 그럴듯한 인과관계를 만듭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 만들기'가 미래 예측력을 높여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눈앞의 위험을 가린다는 데 있습니다.
블랙스완 같은 사건은 본질적으로 인과관계가 불분명하고 무작위적인데, 우리 뇌는 이를 논리적 서사로 포장해버립니다. 그러고는 스스로를 속이죠. "이건 예외적인 상황일 뿐이야, 다음엔 이런 일 없겠지"라고요.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기억을 재구성한다.”
더 놀라운 것은 '사후 확신 편향'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나 2020년 팬데믹이 터졌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발생 직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조차 예측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고 나자, 수많은 분석가들이 나타나 "이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고 떠들기 시작했죠. 우리 뇌는 사건이 발생한 후 정보를 재구성하여, 마치 처음부터 그 일이 일어날 줄 알았던 것처럼 기억을 조작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기제들이 합쳐지면 우리는 치명적인 오만에 빠지게 됩니다. "나는 세상을 이해하고 있고, 위험은 통제 가능하다."
하지만 행동심리학적 데이터는 정반대를 말합니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것'에 대해 완벽하게 무지하며, 우리가 가진 통계 모델들은 꼬리 부분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충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블랙스완에 매번 속을까? 칠면조 처럼”
나심 탈레브가 제시한 아주 유명하고도 잔혹한 비유, '칠면조의 비극'이 있습니다.
여기 행복한 칠면조 한 마리가 있습니다. 주인은 매일 아침 정확한 시간에 맛있는 모이를 가져다 줍니다. 첫날도, 둘째 날도, 100일째도 주인은 친절했습니다. 칠면조의 통계 모델에 따르면, "인간은 나를 사랑하며, 내일도 모이를 줄 확률은 99.9%"입니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칠면조는 더 안심하고, 주인을 더 신뢰하게 되죠.
하지만 1,000일째 되는 날, 즉 추수감사절 전날입니다. 칠면조가 평소처럼 주인을 반기며 달려 나갔을 때, 주인은 모이 주머니 대신 '칼'을 들고 나타납니다. 999일 동안 쌓아온 칠면조의 완벽한 통계와 예측은 단 1초 만에 무의미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블랙스완의 실체입니다.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소위 '안정적인 수익'을 내던 전략이 있습니다. 매달 1~2%씩 꾸준히 수익을 내죠. 사람들은 이 수익률이 영원할 거라 믿고 대출까지 끌어다 씁니다.
우리는 '긍정적 경험의 누적'이 위험을 줄여준다고 착각합니다.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위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쌓이고 있죠. 그러다 시장의 '테일 리스크'가 터지는 순간, 지난 10년간 벌어들인 모든 수익은 물론 원금까지 단 하룻밤 사이에 증발합니다. 지금 현재, 고도화된 AI 알고리즘 매매가 지배하는 시장에서는 이 블랙스완의 속도가 빛의 속도로 빨라졌습니다.
“블랙스완이 닥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패닉에 빠진다.”
블랙스완이 실제로 닥쳤을 때 우리 몸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왜 우리는 머리로는 "침착해야 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손은 이미 패닉 셀 버튼을 누르고 있거나 멍하니 굳어버리는 걸까요? 그 답은 우리 뇌의 '오래된 설계도'에 있습니다.
우리 뇌에는 '편도체’라는 아주 작지만 강력한 알람 시스템이 있습니다. 블랙스완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거대한 위협이 닥치면, 이 편도체는 즉시 비상벨을 울립니다. 이때 일어나는 현상을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편도체 하이재킹’이라고 불렀습니다.
평소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복잡한 통계 수치를 분석하며 미래를 계획하게 돕는 곳은 전전두엽 피질입니다. 하지만 블랙스완이 닥쳐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이 비싼 '이성 회로'의 전원을 꺼버립니다.
대신 모든 자원을 근육과 원시적인 본능으로 돌리죠. 이때 우리 몸에는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분비됩니다. 사바나 초원에서 사자를 만났을 때는 최고의 생존 전략이었지만, 현재의 복잡한 금융 위기나 블랙 스완 앞에서는 최악의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주범이 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혈관을 타고 흐르면 우리의 시야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좁아집니다. 이를 '터널 시야'라고 합니다. 블랙스완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전체적인 맥락을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숫자 하나, 뉴스 헤드라인 하나에 매몰됩니다.
"지금 당장 팔지 않으면 전 재산을 잃을 거야!" 이런 극단적인 생각이 드는 이유는 여러분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뇌가 블랙스완이라는 거대한 충격을 처리하기 위해 시스템을 '원시 생존 모드'로 전환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똑똑하다. 그래서 미래를 모른다.”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나는 미래를 모른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수용합니다.
지도는 틀릴 수 있지만, 나침반은 틀리지 않습니다. 세상을 예측하려고 에너지를 쓰는 대신, '어떤 사건이 터져도 내가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블랙스완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개념으로 ‘옵션성’이 있습니다. 옵션이란 '강제성은 없지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블랙스완의 시대에는 지식보다 옵션이 중요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옵션을 많이 가진 사람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훨씬 냉정합니다. 선택지가 많기 때문이죠. 반면 옵션이 없는 사람은 위기 앞에서 본능적인 공포, 즉 편도체 하이재킹에 굴복합니다.
이 글에서 접한 심리적 기제가 여러분에게는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습니다. 대중이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할 때, 여러분은 "아, 지금 사람들의 편도체가 하이재킹당했구나. 이건 전형적인 블랙스완의 반응이야"라고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블랙스완은 공포일까? 역전의 기회일까?”
‘블랙스완'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작위적이고 위험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평범한 우리에게도 거대한 역전의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블랙스완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이를 맞이하는 당신의 마음가짐은 당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안티프래질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