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주지만, 실무 판단력을 앗아가는 AI - 경영전문블로그 Innov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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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0

지식은 주지만, 실무 판단력을 앗아가는 AI

AI 기술을 도입하면 조직 전체 역량이 단숨에 상향 평준화될거라 믿는다. 


갓 입사한 신입 직원조차 사내 지식 기반(knowledge base)에 손쉽게 접근하여, 프롬프트 몇 줄만으로 십 년 차 시니어처럼 막힘없이 일한다. 과거에는 소수의 전문가만이 다루던 복잡한 분석 도구와 기획서 양식도 이제는 AI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유토피아는 치열한 경영 현장에서는 늘 엇나가기 일쑤다. 누구나 그럴싸한 보고서를 뽑아낼 수 있지만, 정작 조직의 핵심 문제를 파고들고 해결하는 능력은 기대와 달리 옅어지고 있다. 



"전문성은 지루한 실무를 거치며 단단해진다"


과거 신입 사원들은 방대한 엑셀 데이터를 밤새워 정제하고 선배들이 쓴 과거 보고서를 수없이 요약하는 지루한 실무를 거치며 서서히 일머리를 키웠다. 이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 업무(routine tasks)를 묵묵히 처리하는 길고 지루한 과정에서 업계가 돌아가는 숨은 맥락과 직관을 경험으로 체득했다. 


숫자가 틀렸을 때 시스템의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는 이론만으로 단번에 배울 수 없으며, 고객의 불만 뒤에 얽힌 구조적 결함 역시 끊임없는 현장의 갈등 속에서 학습할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하찮아 보이던 이런 허드렛일이 사실은 기업의 차세대 리더를 길러내는 가장 훌륭한 훈련소(training ground)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도입된 AI가 이런 허드렛일들을 자동화시키면서, 예상치 못한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Harvard Business Review의 David S. Duncan은 이러한 현상 탓에 주니어 직원이 거쳐야 할 기초 전문성(baseline expertise) 훈련 기회가 아예 사라졌다고 진단한다. 작은 판단조차 스스로 내려보지 않은 직원은 실무의 디테일을 놓치기 마련이며, 궁극적으로는 조직을 이끌 전략조차 스스로 세우기 어려워졌다. 



"지식을 주지만 판단력은 앗아가는 AI"


오랜 세월 깊은 내공을 쌓아온 시니어 직원은 AI가 뱉어낸 결과물을 맹신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깐깐하게 다룬다. 이들은 훌륭한 비서처럼 AI를 도구 삼아 자신의 한계를 채우며 매우 높은 생산성을 누린다. 인공지능이 내놓은 그럴듯한 문장 속에서 거짓과 논리적 비약도 걸려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막 회사에 들어와 기초 체력을 다져야 할 주니어 직원의 사정은 시니어와 다르다. 이들은 기계가 내놓은 결과물의 행간에 숨겨진 맥락을 짚어내고, 그 신뢰성을 꼼꼼히 의심할 수 있는 실무 기초 체력이 부족하다. 


오히려 화면에 출력된 깔끔하고 정제된 문장들을 비판 의식 없이 받아들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스템이 만들어낸 그럴듯한 환각을 진짜 사실로 믿어버린다. 


AI가 쏟아낸 결과물을 제대로 평가(evaluate)하거나 개선하지 못한 채 그대로 결재 보고서에 올리게 되며, 회사가 돌아가는 시스템 곳곳에 거대한 판단력(judgment) 공백이 생겨나게 된다. 이대로라면 불과 몇 년 뒤에는 실무 경험이 부족한 중간 관리자들만 가득 찬 무기력한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식 관리 체계의 전환이 시급하다."


글로벌 컨설팅사 McKinsey의 Bryan Hancock과 Charlotte Seiler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지식 관리 체계의 시급성을 강조한다. 


유행하는 프롬프트 작성법을 며칠 가르치는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며, 회사가 직원을 훈련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은 지식 관리, 역할 재설계, 워크플로 학습, 그리고 관리자의 코칭(managerial coaching)이라는 네 기둥을 튼튼히 세워야 한다. 


가장 먼저 지식 관리는 선배들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암묵지를 명확한 문서와 데이터로 끄집어내는 필수 기반 작업이다. 시니어가 쌓아온 의사결정의 숨은 이유와 맥락을 후배들이 추적하고 학습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역할 재설계(role design)는 주니어 직원의 낡은 책임을 새롭게 바꾸는 과정이다. 이들이 기계가 던져준 일을 단순히 처리하는 부속품에서 벗어나,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감독하는 통제자로 성장하도록 역할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일상 업무 속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할 기회를 끊임없이 주어야만 기계를 앞서는 인간 고유의 통찰력이 비로소 싹트기 시작한다.



"AI가 삼켜버린 실무의 빈자리, 어떻게 채워야할까?"


AI가 삼켜버린 실무의 빈자리에 인간의 날카로운 판단력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트레이닝 시도들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첫걸음은 마치 비행기 조종사를 훈련하듯, 실수를 저질러도 위험도가 낮은 시뮬레이션(simulations) 환경을 업무 곳곳에 도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의 업무 환경은 실패로 인한 부담을 낮추고, 직원이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횟수를 대폭 늘려준다. 


나아가 시간이 갈수록 책임의 무게가 더해지는 실전 훈련(stretch experiences)을 일상 업무 흐름 속에 심어두어 실전 감각을 끌어올려야 한다. 


AI는 직원의 귀찮은 손발을 편하게 해 줄 수는 있어도, 복잡한 비즈니스 직관마저 알아서 길러주지는 않는다. AI가 불러올 미래 환경에서도 지속적인 생존과 성장을 꿈꾸는 회사라면, 겉보기에 화려한 AI 도구가 아니라 구성원을 단단하게 육성할 조직 역량에 더 긴 안목으로 힘을 기울여야 한다. 



Source: 

Bryan Hancock, Charlotte Seiler (Jul 2026), "Building expertise in the age of AI: Who trains the next generation?", McKinsey

David S. Duncan (Feb 2026), "How Do Workers Develop Good Judgment in the AI Era?", Harvard Business 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