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중심을 외치는 기획안 한가운데, 정작 고객은 없다. 우리의 시선이 여전히 세상을 위에서 굽어보는 '신의 위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600년 전, 이 신의 시선을 땅으로 끌어내린 세기의 발명품이 있다. 바로 원근법이다.
"신의 시야에서 인간의 시야로: 원근법의 탄생"
15세기 이전 중세 비잔틴 미술은 현대인의 눈에 평면적이고 왜곡되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화가들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당시 캔버스는 철저히 '전지전능한 신의 시점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신이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 볼 때, 저 아득히 멀리 있는 산과 코 앞에 있는 나무의 물리적 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종교적 중요도로 세상의 질서를 결정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화면 가득 거대하게, 평범한 인간들은 발밑에 조그맣게 그려졌다. 이를 '크기의 위계(Hierarchy of Scale)'라고 한다.
이 거룩한 캔버스에는 그것을 바라보는 나(유한하고 흠결 있는 인간)의 자리는 허락되지 않았다. 인간은 관찰의 주체가 아니라 관찰당하는 피조물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1415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선원근법(Linear Perspective)'을 발명하면서 이 세계관이 뒤바뀐다. 선원근법은 끝없이 뻗은 기찻길이 멀어질수록 한 점(소실점)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3차원 현실의 깊이를 2차원 평면에 그려내는 기법이다.
이 기법이 성립하기 위한 핵심 조건은 단 하나였다. 캔버스 밖의 고정된 위치에 두 발을 딛고 서서 그림 속 특정 지점(소실점)을 정확히 마주 보는 '단 한 명의 관찰자(인간)'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권력이 하늘에 뜬 전지전능한 신에게서, 땅 위에서 고유한 눈높이를 가진 개별 인간으로 이동하였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였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가 하늘에 있는 전지전능한 신에서 땅위에 유한한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르네상스, 인간 중심주의의 거대한 사상이 화가의 붓끝에서 원근법으로 완성된 것이다.
"당신의 비즈니스는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현대 비즈니스에서도 많은 기업이 여전히 중세의 캔버스처럼 '신의 시점'에서 시장을 굽어본다. 기획안 한가운데에 자사의 기술력과 자본을 거대하게 배치하고, 정작 고객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변두리로 밀어낸다. 진정한 혁신은 이런 낡은 캔버스의 시선을 벗어나,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 단 한 명의 소실점'에 카메라를 고정할 때 시작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실린 연구들은 이러한 시점 전환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지적한다.
"고객을 말하며 고객을 바라보지 않는 회사들"
크리스토프 센(Christoph Senn)과 메학 간디(Mehak Gandhi)는 지난 25년간 진행된 1,000개 이상의 고객 중심주의 전환 프로젝트를 분석했다(HBR, 2024년 10월). 그 결과, 경영진과 영업 조직 중 15%만이 실제로 고객 중심적인 전략을 갖추고 있었다. 대다수는 여전히 제품 중심적(product-focused)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
고객의 소실점을 정확히 짚어내려면, 그들이 우리 제품을 통해 진정으로 도달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조지프 파인(B. Joseph Pine II)은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서 기업이 고객의 열망(Aspirations)을 이해하고 그들의 변화를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HBR, 2026년 2월).
"우리회사는 원근법을 제대로 구사하고 있는가?"
르네상스 화가들이 찾아낸 원근법의 캔버스처럼, 비즈니스 기획자 역시 전지적인 시야를 버리고 고객의 시야를 찾아야 한다.
우리 회사의 기획안이 여전히 내부의 기술력만을 과시하는 중세의 성화(聖畵)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고객의 생생한 열망에 닿아 있는 3차원의 공간을 구현하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Source: Christoph Senn, Mehak Gandhi (Oct 2024), "3 Traps on the Way to Becoming a Customer-Centric Company", Harvard Business Review
B. Joseph Pine II (Feb 2026), "Do You Know What Your Customers’ Aspirations Are?", Harvard Business Revie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