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외부에서 혁신(innovation) 기회를 찾아라 - 경영전문블로그 Innov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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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1일 토요일

기업 외부에서 혁신(innovation) 기회를 찾아라

지금까지의 기업들의 혁신 활동은 불확실한 시장 환경에서 주로 안살림을 세밀하게 챙기는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외부에서 새로운 시장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혁신의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90년대 후반 닛산은 지속적인 시장 점유율 하락과 적자로 심각한 파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 때문이다. ‘기술의 닛산’으로 알려질 만큼 기술력은 우수했지만 정작 고객의 니즈와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력을 강조하였고 고가의 자동차 제작만을 고집하여 시장과 고객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말았다.

자력 회생이 불가능했던 닛산은 이런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99년 르노 자동차와 제휴를 맺고 부사장이던 카를로스 곤(Carlos Ghosn)을 데려오게 된다. 곤은 과감한 혁신과 개혁을 통해 위기감 부족과 이익 지향성 결여, 고객 경시 등의 문화를 고쳐 나갔다. 자사 관점이 아니라 고객 관점에서 품질과 납기, 비용 수준을 개선하는 등 고객 지향의 혁신 역량을 가다듬었다. 또한 ‘수익 확대’와 ‘비용 삭감’을 위해 닛산 부활 계획(NRP: Nissan Revival Plan)을 추진하였다. 궁극적으로 닛산이 추구했던 혁신의 목표는 고객 지향과 수익 창출이었다. 그 결과 카를로스 곤은 2년 만에 닛산을 흑자로 전환시켰고 르노와의 제휴 당시 보다 주가를 두 배 이상 상승시켰다. 닛산은 도요타를 추격하는 일본 제2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활하게 되었다.

혹독한 구조 조정을 통해 인력을 삭감하고 비용을 줄이는 것은 어려움에 처한 회사들에서 많이 봐온 일들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닛산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탄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최근에 닛산에서 출시한 차들은 시장에서 호응을 얻으며 매출 호조를 보이고 있다. 닛산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내부 생산성이 아니라 ‘시장에 팔리는’ 모델을 신속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의 가치 창출을 외면한 채 기술력과 내부 생산성만을 중시하는 경우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기업 내부의 관점에서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시장의 관점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은 시장에서 평가 받고 살아 남아야하기 때문이다.
 
 
내부 지향적 혁신의 한계

국내 주요 그룹사가 2005년 신년사를 통해 던진 화두는 ‘초일류 기업 도약’, ‘일등 기업 달성’, ‘성장과 혁신 가속화’ 등이다. 어려운 국내외 경영 환경에서도 공격적인 경영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내 기업들은 이전까지는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서 세계 일류 기업들의 앞선 기술과 경영 시스템을 쫓아가는데 급급하였다. 선도 기업의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지만 후발 기업으로서 신속한 대응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적정 수준의 수익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업들의 경영 시스템이 상당 수준 표준화되어 운영 효율성을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공정 개선을 통한 경쟁 우위의 지속 기간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주요 기업들의 비용 절감 및 생산성 향상 수준은 이미 정점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성장의 정체에 직면한 한국 기업들은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2005년 1월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해 민간 기업들의 연구 개발 투자가 작년 대비 평균 22% 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신성장 사업 발굴을 위한 전략적 제휴도 확산되며 업종간 컨버전스 현상도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활로를 찾지 못한 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증가 추세에 있다.

이는 내부 생산성 추구가 한계에 봉착해 외부에서 시장 기회를 발굴해야 할 필요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혁신 활동도 외부 지향적으로 전환하는 일이 시급하다. 운영 효율성 개선을 내부 지향적 혁신이라고 하면 새로운 시장 기회 창출은 외부 지향적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외부 지향적 혁신을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방안을 살펴본다.
 
 
외부 지향적 혁신의 추구

외부 지향적 혁신은 지금까지 없던 전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과 기존 시장에서 간과했던 세부 시장을 발굴하는 두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혁신의 실마리는 시장과 고객, 그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자사의 역량에서 찾을 수 있다.

● 시장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라

전략의 수렴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기존 시장의 성공 요소가 널리 공유되고 경쟁사간 벤치마킹을 통해 쉽게 전파되고 있다. 동종 산업에 있는 경쟁자들은 대부분 유사한 방식으로 시장 상황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연히 ‘미 투(me too)’ 전략을 양산하게 된다. 그러나 경쟁 우위는 경쟁자와의 차별성에서 비롯된다. 더 나아가 기존 경쟁 구도에서 탈피할 때 진정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월마트의 창업자인 샘 월튼(Sam Walton)은 ‘사회적 통념을 무시하라. 만약 모든 사람이 똑 같은 방법으로 일하고 있다면 정반대 방향으로 가야 틈새를 찾아낼 기회가 생긴다’고 역설하였다.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의 김위찬, 마보안(Renee Mauborgne) 교수는 90년대 중반부터 가치 혁신(Value Innovation)을 제시하고 있다.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와 같은 기존의 전략 이론들은 ‘주어진 산업 내에서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에 집중하였다. 가치 혁신은 이러한 경쟁 상황의 틀에서 벗어나 미개척 분야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쟁 포화 상태에서의 싸움은 승산도 작고 경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기대 이익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톰 피터스(Tom Peters)도 기존의 시장 확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장 창출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최근에 블루오션(Blue ocean)이라는 개념으로 소개되고 있다. 레드오션(Red ocean)은 현존하는 모든 산업을 의미한다. 기존 산업에서 시장 점유율에 집착하게 되면 전통적인 전략 논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바다는 경쟁의 붉은 피로 물들게 된다. 이에 반해 블루오션은 존재하지 않는 산업으로 아직 경쟁으로 얼룩지지 않은 곳이다. 경쟁이란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고 경쟁자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여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산업 영역 안에서 제품이 제공하는 특성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일부 변경함으로써 발굴해낼 수 있다.

기존 시장의 고정관념을 탈피한 사례로 푸마(PUMA)를 들 수 있다. 푸마는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 브랜드 전략을 추구한다. 블루 마운틴은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맥들(White Mountain)처럼 가장 높거나 크지는 않지만 다른 것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산을 의미한다. 푸마는 나이키나 아디다스처럼 업계 1위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매출이 가장 많거나 인지도가 가장 높은 회사가 아니라 선호 받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추구한다. 다른 경쟁사보다 기능적으로 뛰어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기능성 운동화 보다는 패션 스포츠 웨어로 공략하고 있다. 이를 통해 패션에 민감한 여성 고객에게 어필하고 있으며 운동을 즐겨 하지 않는 사람들의 호감까지 얻어내고 있다. 경쟁사와 동일하게 움직이기 보다는 차별화된 라이프 스타일과 패션을 강조하며 고유의 시장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 카페의 고정 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국내 사례도 있다. 90년대만 해도 카페는 커피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공간으로 장소와 인테리어, 음악, 그리고 메뉴의 종류와 맛 등이 한정된 경쟁 요소였다. 그런데 ‘민들레영토’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복합 문화 공간을 표방하였다. 고객들에게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였으며 세미나를 비롯해 도서, 갤러리, 영화 등을 카페 안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고객들이 콘서트를 열거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하여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다양하게 제공하였다. 스타벅스가 고급스런 커피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감성적 공간을 제공해 새로운 시장 기회를 열었다면 민들레영토는 한걸음 더 나아가 카페를 다른 문화 활동과 연계시켜 새로운 시장을 창출시킨 것이다.
 
● 고객에게서 What을 찾아라

기존 경쟁의 틀을 벗어나 수익성 높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은 모든 기업들의 바램일 것이다. 그러나 차별화된 시장의 매력이 큰 반면 그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일은 만만치 않다. 기존 시장을 무조건 뒤집어 놓고 거꾸로 갈 수는 없다. 그 답은 바로 고객에서 찾아내어야 한다.

그런데 기존 고객들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면 혁신 제품을 개발할 수 없다. 일반적인 시장 조사는 평범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위대한 아이디어를 사장시키곤 한다. 기존 시장의 틀 안에서 평균적인 분석 결과를 얻게 되면 점진적인 개선에는 유용하지만 기존 시장의 틀을 깨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보편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기존 조사 방식의 맹점을 이해하고 고객들의 잠재적 욕구에 대한 심층적이고 체험적인 분석 활동이 강화되어야 한다.

휴렛팩커드나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첨단 기술 분야의 기업들은 정성 조사를 선호한다고 한다. 정성 조사가 정량 조사에 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사장시킬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고 고객들의 심층적 욕구 분석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한, 기업과 고객이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시장에 대해 함께 탐색하는 방안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선도적인 소비자 그룹을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이들의 실제 사용 환경과 잠재적인 요구 사항 분석을 통해 새로운 시장 기회를 탐지할 수 있다.

기업들이 고객 조사를 활용하는 방식에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What’ 보다는 ‘How’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시장 조사를 통해 새로운 니즈와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보다는 고객들이 현재 인식하고 있는 기존 경쟁 요소를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새로운 경쟁 포인트를 발굴하기 보다는 시장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경쟁 요소에 자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부합하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이럴 경우에 경쟁 요소(What)의 획기적인 변화 없이 효율적인 전달(How)에만 치우치게 될 우려가 있다.

새로운 경쟁 요소를 도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치 곡선(Value Curve)을 활용할 수 있다. 초저가 항공 서비스로 유명한 사우스웨스트는 경쟁 요소를 가치 곡선을 통해 다른 제품들과 비교하며 고객 지향적 혁신을 끌어냈다(<그림> 참조).

이 과정에서 사우스웨스트는 기존 고객의 니즈에 얽매이지 않았다. 반면 항공편을 사용하지 않는 고객들이 대안으로 무엇을 찾고 있는가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대체재인 자동차가 제공하던 ‘잦은 교통편’이라는 경쟁 요소를 도출하였다. 사우스웨스트는 더 빈번한 교통편에 역량을 집중하고 나머지 요소들은 최소 수준으로 제공하게 된다. 반면 기존의 다른 항공사들은 가격과 음식, 좌석 등 공통적인 경쟁 요소에 골고루 신경을 써왔다. 사우스웨스트가 다른 항공사처럼 기존 고객들의 일반적인 요구 사항에만 귀를 기울였다면 이전의 경쟁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차별적인 경쟁 요소(What)를 도출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 협력을 통해 실행력을 강화하라

시장의 변화를 파악하고 고객의 니즈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 제반 업무 활동이 민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부서간 원활한 협력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상품 기획 초기 단계부터 마케팅, 영업, 디자인, 개발, 구매, 생산 및 품질 부서 등 다기능 협력 팀을 구성하여 시행착오를 줄이고 궁극적으로 개발 기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 여기서 협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핵심 기술 자체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적시에 출시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생산성과 품질 향상, 원가 절감에만 치우치면 내부 지향적 혁신으로 그치게 된다. 혁신 활동을 추진할 때 기술이나 내부 성과에만 매몰되지 말고 고객의 소리를 반영하여 시장성이 있는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부서간 협력 등 내부 역량과 함께 외부 연계 역량도 중요하다. 시장의 변화 속도가 빠르고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자체적인 역량만으로 혁신을 수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혁신의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업 외부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간, 산업간 융합이 확산됨에 따라 기업간 네트워킹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버드대학의 체스브로(Chesbrough) 교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폐쇄형 혁신은 회사 내부의 자원만으로 연구 활동을 수행하고 개방형 혁신은 자체 자원과 함께 외부의 아이디어와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제품 기술이 복잡해지고 경쟁자들도 많아져서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도 필요한 기술을 모두 자체 조달해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 폐쇄적인 관점에서는 독자적인 특허 기술 자체를 중요시하지만 개방적인 관점에서는 기술을 시장에서 소싱해 사업에 활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개방형 혁신의 목적은 외부 지향적 혁신과 마찬가지로 기술 개발 자체가 아니라 기술의 활용과 새로운 시장 창출에 있다.
 
 
시장에서 살아 숨쉬는 혁신 활동 추구

상당수의 기업들이 과거에 이룬 성공이 실패의 원인이 되어 몰락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기존의 내부 혁신 성과에 만족한 기업은 외부의 변화에 둔감한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환경 변화에 뒤처지게 됨으로써 심각한 위기에 빠지곤 한다. 내부 혁신 역량을 확보한 다음에는 외부 가치 창출 역량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특히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외부 지향적 혁신 활동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다윈은 진화설을 통해 강한 종(種)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적응력 있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하였다. 이는 외부 시장에 대한 대처 역량과 함께 지속적인 대응 시스템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혁신도 단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경영 시스템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생물이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진화해가듯이 기업도 지속적인 혁신 시스템을 갖추고 시장과 고객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장강일. LG주간경제 20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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