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경영의 발전 단계 - 경영전문블로그 Innov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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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1일 토요일

디자인 경영의 발전 단계

디자인이 제품의 형태를 다듬는 개념에서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포괄적으로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자인 경영도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추구하는 확대된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제품 외형의 개선이나 단발적인 히트 상품 개발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성장의 툴로 확산되고 있는 디자인 경영에 대해 살펴본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디자인 활동 성과가 그야말로 눈부시다. 최근 LG전자가 세계 최고 권위의 디자인 상인 Reddot Design Award를 수상하였다. 이 상은 디자인의 미래를 제시하는 기업에 수여되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최초이며 아시아에서는 2000년 소니의 수상에 이어 두번째이다.

매년 라스베가스에서 개최되는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주요 혁신상을 수상하며 디지털 한류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CES 혁신상은 디자인과 기술이 우수한 제품에 수여되는 상으로 한국 기업들은 소니와 필립스 등을 제치고 해마다 수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런 괄목할만한 성과들은 일찍이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역량 강화에 힘을 기울인 주요 기업들의 각고의 노력의 결과이다. 디자인은 점차 제품 기획에서 만족도 조사에 이르는 전 과정에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경영의 주요한 도구로 부각되고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기업들이 디자인 경영을 내세우며 외형적으로 상당한 디자인 역량을 갖춰가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디자인을 여러 제품 속성 중의 하나로 여기고 해당 기능의 강화에만 주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본 고에서는 디자인 개념의 변화와 함께 디자인 경영이 진화해 가는 방향성을 살펴보려 한다.
 
디자인은 스타일에 머물지 않는다

디자인이라면 일반적으로 특정 스타일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디자인을 단순히 제품의 형태와 색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다. 디자인은 목적을 가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행위이다. 초기에는 실용적이고 미적인 가치를 중시하다가 점차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이를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기능으로 확산되고 있다.

P&G의 디자인 혁신 담당인 클라우디아 코치카는 디자인의 유형을 4단계로 제시한다. 첫번째는 디자인 마인드의 결여(Clueless) 단계로 제품의 기능 구현에만 치중하여 제품의 형태나 사용자의 편의가 고려되지 않는다. 이해하기 힘든 사용 설명서와 복잡한 기능들로 제품의 기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한다. 두번째는 스타일(Style) 단계로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반영되어 제품의 형태와 포장에서 사람의 시선을 끌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기본적인 기능 구현이 우선이고 디자인은 외형과 최종 마무리를 맵시 있게 다듬는 수준에서 활용된다. 세번째는 기능 향상(Function) 단계로 디자인이 외형 꾸미기에만 머물지 않고 소비자가 좀 더 쉽게 제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형태를 변형시켜주는 단계이다. 디자인과 기술의 협업이 강조되고 디자인에 의해 제품의 형태가 수정되고 기능이 더욱 향상된다. 마지막 단계는 문제해결(Problem Solving) 단계로 디자인이 제품의 스타일과 형태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실제 제품을 통해 얻고자 하는 니즈를 파악하고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디자인이 R&D와 회사 내부 역량을 결집하여 소비자의 소비 활동과 구매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 개념의 변화와 함께 디자인 경영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기업의 목적은 사람과 돈, 물자, 기술 등을 이용하여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 이익을 거두는 것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역할은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최근에는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생산에서 마케팅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디자인으로 경영의 중심이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 경영의 진화 포인트

디자인을 중심에 둔 경영 패러다임인 디자인 경영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을까? 디자인 개념의 확대로 인해 그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는 디자인 경영의 변화 모습을 살펴보자.
 
● 스타일에서 고객의 구매 경험으로 확대

과거의 디자인이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상품의 포장이나 외형을 다루었다면 이제 소비자의 문제 해결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생각하는 것을 갖게 해 주어야 한다. 디자인 경영은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전 과정에서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디자인 경영이 추구하는 고객 지향적 프로세스는 소비자가 당면한 문제 인식에서 시작한다. 기존의 마케팅 조사는 통계 조사의 한계로 인해 고객의 잠재적인 니즈를 찾지 못하고 평균적인 요구 사항을 파악하는데 그치는 경향이 있다. 자연히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시장성을 인정받지 못해 사장되고 범용적인 제품 기획이 진행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고객이 표현하지 않는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실제 사용 행태와 인지적 특성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클라우디아 코치카는 P&G의 첫 ‘디자인 혁신 전략’ 담당 부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브랜드 팀에 톱 디자이너들을 기용하였다. 이는 제품 디자인이나 패키지 등의 추상적인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어떻게 제품을 경험하는지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P&G는 소비자들을 인터뷰하지 말고 직접 그들의 집을 방문하라고 한다. 실제 그 제품이 어떻게 쓰이는지 파악하여 소비자들이 불만족스럽지만 표출하지 않는 속성들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파악한 소비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단순한 외형에만 한정하지 않고 사용자의 구매 과정이나 사용 패턴에 포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기저귀의 경우에도 기저귀 품질이나 형태에만 국한하지 않고 속옷 개념으로 인식하여 패션 디자이너까지 두고 있다.

LG 구본무 회장도 지금까지 개별 제품 위주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고객의 생활 공간 전반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총체적인 디자인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LG전자는 디자인을 제품의 아름다움과 독특함을 벗어나 제품과 고객 사이의 드라마로 규정한다. 제품에만 머물지 않고 고객의 마음에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는 것을 추구한다. 궁극적으로는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에게 더 새로운 생활과 더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디자인은 유형의 제품뿐만 아니라 무형의 서비스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보건의료회사인 카이저 퍼머넌트는 2003년에 방문 환자의 증가와 비용 절감을 위한 중장기 성장 전략을 수립하였다. 디자인 컨설팅사 IDEO는 환자들이 의료 시설을 이용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환자의 입장에서 관찰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IDEO는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한 체크인 과정이 복잡하고 대기 과정도 매우 불편함을 파악하였다. 어린 아이와 노인들, 그리고 이민자들은 병원을 방문할 때 대부분 부모나 친구들과 함께 오게 되는데 대기실에는 환자 이외에 출입이 금지되어 환자가 불안감을 느껴야만 했다. 진료실에서도 공포스런 의료 기기에 둘러 쌓인 채 20분 가까이 홀로 기다려야 했다. 이런 환자가 경험해야 하는 일련의 프로세스 분석을 통해 IDEO는 새로운 의료 장비 구매와 공간 확대를 성장 전략으로 도출하지 않고 환자의 치료 경험 개선을 제시하였다. 의료 서비스를 받는 과정을 쇼핑 공간처럼 환자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하도록 권고하였다. 소비자의 문제 해결을 유형의 건물과 시설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고객 경험에서 찾은 것이다.
 
● 창의적 경영 체질 구현

디자인 경영은 회사 전반의 경영 프로세스와 조직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선진 기업들은 창의성을 디자인 경영의 토대로 인식하며 조직 내에 창의적인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P&G의 래플리 회장은 2000년 CEO로 취임한 이후에 기술과 마케팅 중심에서 디자인 경영 중심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취임 이후 수천 명의 임원과 중간 관리자를 정리하였지만 디자인 관련 인원은 4배로 늘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R&D에서 탈피하여 전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외부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C&D(Connect & Development) 전략은 디자인에도 유사하게 적용이 된다. P&G는 주요 디자인 작업은 외주로 주고 사내에서 디자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부의 디자인 매니저들은 외부의 디자인 에이전시와 사내 제품 매니저, 마케팅팀, 개발팀 사이에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 받으며 전체적인 동향을 파악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디자이너를 R&D 부서에 파견하여 전체 프로세스의 초기 단계부터 디자인 통찰력을 가지고 제품 개발에 동참하도록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사내의 혁신 교육센터를 통해 디자인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 관리자들에게 디자인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디자인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해 아이디어가 묵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런 조직적 지원과 협업을 통해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고 활용하는 프로세스를 총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최적의 체계를 구축 중에 있다.

GE의 제프리 이멜트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취지로 상상력 약진 프로젝트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창의와 혁신 문화를 전사적으로 촉진시키고 있다. 또한 시장과 고객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이 내부 관리에 치우치지 않고 외부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파악하고 마케팅과 디자인 역할 강화와 창의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있다. 내부의 전문가들을 조직의 다양한 부문에 2년간 파견하여 마케팅 지식의 전파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그 뿐 아니라 디자인 컨설팅 인력들을 영입하여 고객의 잠재 니즈를 파악하는데도 열심이다. 구성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독려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이다.
 
● 기존 혁신의 한계를 넘어

비즈니스위크誌는 보스턴컨설팅그룹과 공동으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100대 기업을 선정하고 있다. 올해 두번째 진행된 조사에서는 애플이 1위를 차지하였고 국내 기업들은 LG전자, 삼성전자, SK텔레콤이 포함되었다.

혁신을 추구하는 국내외 기업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이를 위해 M&A를 통한 신사업 진출 등이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조직 인수가 속속 실패로 이어지고 무리한 M&A가 오히려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인수합병이 아닌 회사 내부 자원을 활용한 자생적 성장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비즈니스위크誌의 조사에서도 91%의 기업이 자생적 성장을 통한 혁신을 중요하게 평가하였다.

자생적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적인 신상품 개발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혁신적인 제품들이 반드시 성공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혁신 기술에 시장에서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기술 혁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성장 돌파구와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한다.

소니의 명예회장인 오가 노리오는 소니의 제품이 경쟁사와 비교해 기술력과 가격, 성능, 기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소니의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유일한 요소는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100대 혁신 기업의 공통된 혁신 요소도 디자인 차별화로 분석되고 있다.

애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1위의 혁신 기업으로 선정된 애플은 창업이래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을 출시해 전세계 MP3 플레이어의 약 70%를 점유하였고 매출은 출시 이후에 두 배까지 성장하였다. 아이팟은 흰색의 선과 심플한 형태로 소비자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깔끔한 스타일만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기존 MP3 플레이어 업체들은 성능과 음질을 강조하고 디자인도 개별 기기의 스타일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아이팟은 디자인과 소비자의 편리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더 나아가 소비자들이 곡을 구매하고 음악을 향유하는 소비 스타일까지 디자인하였다. 이로 인해 아이팟은 단순한 디지털 기기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 코드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애플이 고질적인 기술 집착증에 벗어나 디자인을 모든 혁신의 중심에 두고 재기에 성공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로운 성장의 도구, 디자인 경영

기업들의 R&D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 신성장 엔진의 열쇠를 기술 개발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우수한 제품이 항상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기업들의 과잉 경쟁으로 고객의 기대 수준을 넘어버리는 오버슈팅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또한 회사 내부적인 기술 로드맵에 따라 제품을 출시하면 창의적인 제품 아이디어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기술은 진화 발전하기 때문에 몇 단계를 뛰어 넘어 현상을 급격하게 타파하기는 힘든 것이다.

이에 반해 디자인은 기술 혁신에 비해 투자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고 회수 기간도 짧다. 특히 소비자가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적 차별화가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는 디자인이 획기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고객에게 사랑 받는 제품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디자인을 뒷받침하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투입 비용 대비 더 효과적이다. 애플은 디자이너는 창의적인 디자인에 전념하고 엔지니어는 그 디자인에 맞게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찾아내도록 하는 생산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디자인을 형태와 스타일로만 받아들이면 그만큼만 활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디자인 경영을 새로운 혁신의 툴로 인식하게 된다면 매우 저렴하고 효과적인 성장 도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강일. LG주간경제, 200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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