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보통 숨기고 싶은 것이다. 기업은 실적 하락이나 프로젝트 실패를 외부에 알리길 꺼린다.
하지만 그 실패를 모아 전시한 ‘박물관’이 있다. 바로 ‘실패 박물관(Museum of Failure)’이다.
이곳에는 1,000개가 넘는 실패한 제품, 서비스, 브랜드가 전시돼 있다. 케첩 요리책, 여성을 위한 연필, 할리 데이비슨 향수, 뉴 코크까지. 처음엔 웃음이 나올지 모르지만, 이 실패작들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실제 기업이 수백억 원의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만든 결과물들이다.
이 박물관을 만든 벤처캐피털리스트 션 제이콥슨은 이 모든 실패를 6가지 원인으로 정리했다. 이 실패 카테고리는 단지 과거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어떤 전략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기업에게 ‘반드시 피해야 할 경로’를 알려주는 실용적 팁을 제공한다.
단지 ‘실수하지 말자’는 교훈이 아니다. 왜 실패가 반복되고, 어떤 지점에서 의사결정이 엇나가는지를 분석해, 오늘의 기업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실패는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실패를 웃고 넘기는 기업은 또다시 실패하고, 실패를 배우는 기업은 더 강해진다.
"첫째, 제품-시장 궁합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빨라도 소용없다."
1999년, Webvan은 ‘세계 최초의 온라인 식료품 배달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슬로건은 “집에 오면 냉장고에 저녁이 기다린다.” 당시로선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실행 전략이었다. 제품과 시장의 궁합이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무려 8억 8,0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받아 미국 10개 도시로 동시에 확장했다.
Webvan은 자체 물류센터를 구축했고, 배송 기사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이는 엄청난 고정비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고객들은 아직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유통 시스템과 소비자 행동의 불일치는 매출 부진으로 이어졌다. 결국 Webvan은 3년 만에 파산했다.
이 실패는 ‘제품-시장 궁합(Product-Market Fit)’이라는 스타트업의 근본 원칙을 무시한 대가였다. 기술이 앞서 있다고 시장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고객의 수요, 사용 습관, 구매 심리까지 모두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시장이 열린다.
많은 창업가들이 ‘좋은 아이디어’가 성공을 보장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장에서 이 제품이 실제로 팔릴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아무리 빠르게 실행하고, 과감하게 투자해도 제품과 시장의 궁합이 어긋나면 실패는 시간 문제다.
따라서 어떤 제품이든, 초기에는 작게 실험하고 고객 반응을 통해 학습해야 한다. 확장보다 검증이 먼저다. 제품-시장 궁합 없이 확장에 나서는 것은 방향을 모른 채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과 같다. 속도보다 방향이 먼저다.
"둘째, 팀의 전문성이 부족하면, 믿음이 환상이 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비전은 강력하다. 하지만 그 비전을 현실로 바꾸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스타트업 역사상 가장 극적인 실패로 꼽히는 ‘테라노스(Theranos)’는 이 원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한 방울의 피로 수십 가지 질병을 진단하겠다는 슬로건 아래, 테라노스는 한때 기업가치 100억 달러를 넘긴 실리콘밸리의 아이콘이었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하는 흑색 터틀넥과 확신에 찬 말투로 투자자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정작 핵심 기술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전문가는 팀 내에 없었다.
의료 진단이라는 복잡하고 규제 많은 영역에 도전하면서도, 테라노스는 생명과학, 의료기기, 혈액 분석 등 핵심 분야의 전문가를 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사회조차 국방, 정치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고, 기술 검증에 대한 실질적 역량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믿음만으로 쌓아올린 기술 신화는 내부 고발과 보도에 무너졌고, 창업자와 임원은 형사 처벌을 받았다.
이 사례는 창업 초기부터 ‘실행할 수 있는 팀(Executional Team)’을 구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아무리 비전이 크고 시장이 좋아도, 이를 현실로 전환시킬 전문성과 경험이 없으면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창업자 개인의 열정과 확신이 회사를 설계하는 데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해야 한다. 비전은 방향을 잡지만, 전문성은 현실을 만든다.
"셋째, 고객이 원하지 않는 경험은, 아무리 스마트해도 실패한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고객이 원하지 않는 방식이라면 실패는 피할 수 없다. 구글 글래스(Google Glass)는 이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구글 글래스는 안경 형태의 스마트 기기로, 음성 명령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카메라로 실시간 촬영하며, 사용자 눈앞에 디지털 정보를 띄우는 기술이 집약된 제품이었다. 의료, 교육, 산업 현장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었고, 특히 의사들이 환자 기록을 보면서 진료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실사용자, 즉 고객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얼굴에 기계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일반 소비자들도 거리에서 다른 사람을 촬영할 수 있는 기기를 착용하고 다니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 사생활 침해 우려와 어색한 외형은 소비자에게 ‘스마트함’보다 ‘불쾌감’을 먼저 느끼게 만들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경험 설계의 실패였다. 고객의 일상, 감정,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기능 중심의 사고만으로 제품을 밀어붙인 것이다. 실제로 기술은 훌륭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례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기술의 진보보다 앞서야 할 것은 ‘고객이 받아들이고 싶은 경험’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그것이 고객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융합되지 않으면 ‘미래’가 아닌 ‘실패’로 귀결된다. 고객 경험은 단순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아니라, 감정적, 문화적, 사회적 수용성까지 고려한 전방위 설계다.
"넷째, 돈을 쓰는 건 쉬워도, 관리하는 건 전략이다."
막대한 자금력은 때때로 기업에 오히려 독이 된다. ESPN은 2006년 ‘스포츠 팬을 위한 휴대폰’이라는 개념으로 모바일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ESPN Mobile이라는 브랜드로 전용 휴대폰을 출시하고, 사용자에게 경기 스코어, 뉴스, 하이라이트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려 했다.
문제는 시장과 무관한 방식으로 프로젝트가 설계됐다는 점이다. 당시 스마트폰은 보편화되지 않았고, ESPN의 휴대폰은 통화 기능 외에는 ESPN 콘텐츠만 볼 수 있는 제한된 기능을 갖췄다. 무엇보다 사용자는 굳이 ESPN 전용 폰을 따로 구매할 이유가 없었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된 자금은 약 1억 5천만 달러. 슈퍼볼 광고까지 집행했지만, 전체 판매 목표의 6% 달성에 그치며 실패로 막을 내렸다. 콘텐츠는 훌륭했지만, 기획과 자금 운영은 치명적이었다.
이 사례는 재무 관리가 단순한 숫자 계산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자금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순서로 집행하느냐는 전략 그 자체다. 시장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제품 검증 없이 대규모 마케팅을 선행한 판단은 자금의 낭비로 직결됐다.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자금은 ‘속도’를 높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는 모든 지출에 대해 “이 비용이 학습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가?”, “고객 확보에 직접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돈을 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돈을 전략적으로 쓰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다섯째, 타이밍이 틀리면, 모든 전략이 무력화된다."
비즈니스의 성공은 종종 ‘언제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에 의해 결정된다. 위워크(WeWork)의 사례는 이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위워크는 유연한 오피스 공간을 제공하는 공유오피스 플랫폼으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니콘 기업이었다.
고정 오피스에서 벗어나 월 단위 임대, 즉시 확장 가능한 공간 제공은 디지털 노마드와 스타트업의 니즈를 충족시켰고,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업모델과 외부 환경 사이의 ‘시간차’였다.
위워크는 10~15년 장기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공간을 단기 계약으로 재판매하는 구조였다. 문제는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변수였다. 갑작스러운 원격근무 확산과 오피스 수요 감소는 이 구조를 정면으로 뒤흔들었다. 고정비는 남고, 수익은 급감했다. 결과적으로 16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고, 기업은 존립 위기에 몰렸다.
물론 팬데믹은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사례는 어떤 전략이든 ‘미래의 흐름’에 기반하지 않으면 불확실성 앞에서 무력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지 지금의 수요나 성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12~24개월 후 시장의 모습까지 예측하고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전략은 절대 고정된 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시점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어야 하는 방향성’이다. 잘 짜인 사업 모델이라도, 시장의 흐름과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성공적인 기업은 단순히 좋은 전략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전략을 ‘언제 실행하느냐’를 결정할 줄 아는 기업이다.
"여섯째, 경쟁자를 무시한 순간, 당신의 시대는 끝난다."
1990년대 말,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비디오 대여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전 세계에 9,000개가 넘는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했고, “Be kind, rewind(되감아서 반납하세요)”라는 문구는 대중문화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 거대한 제국은 단 한 번의 전략적 오판으로 무너졌다.
당시 신생 기업이었던 넷플릭스(Netflix)는 온라인 DVD 대여 모델을 제안했고, 블록버스터는 이를 불확실하고 비효율적인 실험으로 치부했다. 실제로 넷플릭스 인수 제안이 5,000만 달러에 들어왔지만, 블록버스터는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몇 년 후,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미디어 소비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블록버스터는 끝까지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모델을 고수했고, 변화하는 소비자 행동과 기술 전환의 흐름을 놓쳤다. 기존의 성공 공식에 집착한 대가는 결국 파산이었다.
이 사례는 경쟁을 ‘지금 눈에 보이는 상대’로만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오늘날의 진짜 경쟁자는 더 나은 방식으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을 가진 존재다. 과거에는 비용이나 유통이 경쟁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속도, 기술, 데이터, 고객 경험이 결정적 요인이 된다.
경쟁이란 언제나 존재하지만, 그 방식은 빠르게 진화한다. 강자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기존 경쟁자를 이기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자와의 게임을 미리 준비했기 때문이다. 경쟁을 과소평가하는 순간, 당신의 시장은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다.
"실패는 기억을 남기지만, 통찰은 선택에서 온다."
실패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선택의 결과다. 제품 출시 시점, 고객 경험 설계, 팀 구성, 자금 운용, 경쟁 대응 등. 어떤 것도 단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일련의 작고 반복된 판단들이 누적된 결과다.
실패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들은 기업이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놓쳤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이들은 단순히 ‘웃긴 사례’가 아니라, 오늘의 비즈니스 리더가 놓쳐선 안 될 의사결정의 함정을 상기시킨다.
성공적인 기업은 실패를 피하는 기업이 아니다. 실패를 미리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이 잘못됐는지’를 냉정하게 복기하는 기업이다. 반대로, 한때의 성공에 취해 질문을 멈추고, 지표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자만하는 순간, 그 기업도 곧 ‘다음 박물관 전시품’이 될 수 있다.
경쟁은 빨라지고, 기술은 예측 불가하며, 고객은 변덕스럽다. 이럴수록 중요한 것은 완벽한 전략이 아니라, 끊임없이 점검하고 조정하는 습관화된 의사결정 태도다. 즉, 결과보다 과정을 질문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결국 경영이란, 오늘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연속이다. 실패의 기억은 남지만, 그 실패를 분석하고 선택을 바꾸는 사람만이 통찰을 얻는다. 실패를 반복하는 기업과 실패에서 배우는 기업의 차이는, 단 한 가지—질문을 멈추지 않는 습관이다.
실패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Source: Sean Jacobsohn (Apr 30, 2025), "The 6 Forces of Failure—and How to Protect Your Company from Them", HBR On Strategy (ChatGPT 활용 정리)
댓글 없음:
댓글 쓰기